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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충돌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을 “아테네의 부상과 그것이 스파르타에 준 두려움이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훗날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이 개념을 현대 국제정치에 적용해,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이 충돌한 역사적 사례 16건 중 12건이 전쟁으로 귀결되었다고 짚어냈다. 이 주장에 반대하는 학계의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어쨌든 이 개념은 오늘날 미·중 전략 경쟁을 설명하는 대표적 프레임이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 자체가 아니라 시진핑이 왜 이 프레임을 반복하느냐에 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자국을 “세계 최대 개발도상국”이라 부르지만, 실제 행동은 전혀 다르다. 경제·기술·군사·외교 모든 영역에서 미국과 대등한 초강대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시진핑이 트럼프 앞에서 이 함정을 언급하는 순간, 중국은 미국의 질서 아래 속한 국가가 아니라 미국과 세계를 양분할 수 있는 경쟁국가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시진핑이 말하는 “함정을 피해야 한다”는 발언은 평화를 위한 메시지가 아니라 미국을 향한 강력한 경고다. 베이징은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 첨단기술 제재, 공급망 재편, 인도·태평양 동맹 강화 등을 중국의 부상을 가로막는 전략적 봉쇄로 인식한다 즉, 향후 충돌이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중국의 팽창이 아니라 미국의 두려움과 견제에 있다는 명분을 국제사회에 선제적으로 각인시키려는 의도이다.
겉으로는 “전쟁을 피하자”는 책임 있는 언어를 쓰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부상을 인정하라”는 압박이다. 국제사회 일부에서 미국을 기득권에 집착하는 불안한 패권국으로 보고, 중국을 충돌을 피하려는 이성적 도덕국가로 오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프레임은 중국 내부 정치와도 맞물린다. 미국과의 갈등을 “서구 패권국이 떠오르는 중국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순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서사 아래 인민의 민족주의 결집은 강화되고 내부 불만은 외부로 흡수된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미·중은 군사적으로 경쟁하면서도 반도체·무역·금융·인공지능 등 글로벌 공급망으로 깊게 얽혀 있다. 완전한 디커플링(분리)은 양국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가장 위험한 화약고는 대만이다. 중국은 대만 통일을 민족적 과업이자 주권 문제로 보지만, 미국은 대만을 인도·태평양 질서와 첨단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여긴다.
보다 더 큰 문제는 양국 모두 자신을 ‘방어자’라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해, 베이징은 중국의 부상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고 믿는다. 서로를 도발자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전략적 오판으로 언제든 우발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은 “중국의 부상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니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진핑이 던진 프레임의 기만성을 냉정하게 분리해내야 한다. 미·중 경쟁은 단순한 강대국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규범에 기반한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힘의 우위에 기반한 권위주의 체제 중 미래 세대가 어떤 세계에서 살아가야 할지를 결정하는 거대한 가치 체계의 충돌이자 문명적 분기점이다. 시진핑이 말하는 '함정의 회피'는 결국 인류의 보편적 규칙을 중국식 권위주의 앞에 양보하라는 협박이나 다름없다.
세계는 더 이상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리바이던(Leviathan)의 장기판이나 체스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과거의 안이한 이분법은 이미 유효기한이 끝났다. 기술이 곧 주권이 된 지금, 전략적 모호성은 기회주의라는 오명과 함께 양쪽 모두에게 버림받는 독약이 될 뿐이다.
이제 한국을 비롯한 가치 공유국들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프레임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 패권 논리에 종속되는 대신 규범과 규칙을 중시하는 다자간 연대를 견고히 구축해야 한다. 특정 강대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다변화 전략과 대체 불가능한 '독자적 핵심 기술'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쥐어야만 고래들의 싸움터에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
시진핑이 던진 질문, "미국은 중국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에 대한 진짜 답은 미국 혼자 내리는 것이 아니다. 패권의 성벽을 무너뜨리려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세계 중견국들이 자국의 자유와 번영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단단한 연대의 방파제를 세울 수 있느냐에 21세기 세계질서의 진정한 명운이 달려 있다.
세계는 미 중 힘겨루기의 시대에서 두 나라 가치체계의 충돌로 문명적 분기점에 돌입되었음을 간파하는 글이다.
세계는 더 이상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리바이던(Leviathan)의 장기판이나 체스판이 되어서는 안 안되며,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과거의 안이한 이분법은 이미 유효기한이 끝나가고 있는 작금의 국제 기류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기회주의라는 오명과 함께 양쪽 모두에게 버림받는 독약이 될 뿐이라는 안창해 발행인의 지적은 한국등 중견국들의 예리한 판단을 통한 자국의 운명과, 아울러 세계질서의 명운이 달려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은 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정부와 국민 모두가 고민해야 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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